[안재휘 칼럼] ‘적폐청산’과 ‘세탁기’에 관한 명상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5-03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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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논설고문,  한국기자

협회장

 

 1945년 이후 해방공간에서 정치깡패 이정재의 활약상은 거의 신화에 가깝도록 화려하다해방 전 경찰생활을 했던 그는 6.25한국전쟁 이후에 동대문파라는 조직을 건설한다이정재는 종전의 주먹들과 달리 상인들의 애로사항을 바로바로 접수해 깔끔하게 해결해주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물론 그 이면에는 무지막지하게 이권을 챙기는 부조리를 자행했다. 4·19혁명 이후 그는 스스로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고 가까스로 풀려난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이정재는 이듬해 5.16 군사정변 세력에 의해 다시 체포된다.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는 커다란 피켓 앞에서 이름 석 자가 쓰인 턱받이를 목에 걸고 행진하는 그의 사진은 유명한 한 장면이다. 사형을 선고받은 이정재는 19611019억울하단 말은 안 한다는 대목이 포함된 유언을 남기고 서울형무소 형장에서 처형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44세였다

 

정변세력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거사의 명분

 

1966년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극좌 사회주의 광장정치였던 문화대혁명은 10년간 무려 300만 명을 숙청했고, 경제피폐와 부정부패를 만연시켰다. 중국공산당마저 뒤늦게 극좌적 오류였다고 공식 평가했다. 전두환 군부가 국민적 환심을 사는 동시에 공포분위기 조성을 위해 단행한 삼청교육대는 449명 사망(후유증 사망자 포함)을 비롯해 정신장애 등 상해자를 2678명이나 발생시킨 부끄러운 인권침해 역사였다.

 

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세력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거사의 명분이다. 어떻게 하면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아낼 것인가에 온통 신경을 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이후 이정재를 비롯한 핵심 깡패들을 붙잡아 사형시켰고, 재수 없이 걸려든 제비족들에게는 징역을 살게 했고, 동네 건달들은 국토재건대에 끌고 가 강제노동을 시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한 다음 실시한 삼청교육대는 이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민초들의 이지(理智), 반이성 용허할 만큼 미천하지 않아

 

정변세력들의 그런 전략은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사회를 어지럽히던 족속들을 일거에 청소해주는 그런 극단적인 조치들은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청량한 감동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해방이후 민생을 어지럽히던 불량세력의 행패에 시달렸던 세대들은 지금도 다시 그런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오죽 답답하면 저러랴 싶기도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한낱 시대착오적인 푸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는 그런 단세포적인 조치들이란 유효하지도 않거니와, 만약 그런 사태가 반복된다면 사회혼란은 상상을 초월할 게 분명하다. 우리는 이미 그 어떤 충격적인 조치도 합법이 아니면 안 되는 엄준한 땅에 살고 있다. 민초들의 이지(理智)가 이제는 그런 어설픈 반이성적 조치들을 용허할 만큼 미천하지 않다. 그런 발상은 독재를 인내할 수밖에 없었던 무질서 시대에나 통용됐던 고전적이고 유치한 수단에 불과할 따름인 것이다.

 

대선후보들의 국민통합주장 가장 이중적으로 들려

 

5.9장미대선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출마한 후보들 간의 대결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치러지는 선거는 민의(民意)를 반영해 평화적으로 지도자를 뽑고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권력을 부여하는 가장 진화된 제도다. 대통령은 국민통합이 으뜸사명인데, 대선후보들이나 캠프에서 쏟아져 나오는 주장들을 바라보면 께름칙한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그 중에도 가장 이중적으로 들리는 말이 대통합이다.

 

선두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선거운동은 적폐청산이라는 구호로 시작됐다. 이 구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형성된 비판적 민심을 자극하면서 상당부분 지지율을 높이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세탁기발언도 마찬가지다. 강직한 검사 이미지를 갖고 있는 홍 후보의 발언 역시 많은 불합리를 안고 있는 국가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민심을 꽤 흔들었을 것이다.

 

세탁기’, ‘적폐청산’, ‘보수궤멸유권자 혼란 가중

 

문재인 후보는 선거중반 이후 적폐청산구호를 자제하고 대신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거듭 앞세웠다. 그러던 그가 압도적인 지지율에 취한 것인지 최순실을 비롯해 국가권력을 이용한 부정축재 재산 모두 국가가 환수하겠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비리, 방산 비리, 자원외교 비리도 다시 조사해 부정축재 재산 있으면 환수하겠다고 외쳤다. “대통령이 되면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문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 이해찬 의원은 충남 공주 유세에서 이번에 우리가 집권하면 몇 번을 집권해야 하나. 극우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말해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문 후보는 며칠 전 편 가르기 정치, 분열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며 국민대통합정부 구성을 강조했다. 그랬던 그와 캠프가 선거 종반에 또다시 적폐청산으로 회귀해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흉중에 분열·보복정치품은 것 아닌지 합리적 의심

 

홍준표 후보의 세탁기발언도 마찬가지다. 그는 TV토론에서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고 확 돌리겠다, 1년만 돌리겠다고 말했다. 홍 후보는 세탁기에 옷을 넣고 돌리는 퍼포먼스까지 벌이며 선거유세를 펼쳤다. ‘한국판 킬링필드라는 극단적인 비유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문재인의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는 역사 속에 존재하는 보복정치의 비극들을 연상케 한다. 홍준표의 세탁기역시 비슷한 오류를 떠올리게 한다.

 

대선후보들이 실질적으로는 흉중에 편협한 분열정치보복정치를 품고 있으면서도 오직 표를 불릴 심산으로 입에 발린 국민통합운운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 많은 국민들의 합리적인 의심이다. ‘청산위원회에서 잡아 족쳐도 될 깡패나 세탁기에 마구 집어넣어도 되는 인권도 따로 있는 세상이 결코 아니다. 권력보다 독한 술은 없다. 처음엔 사람이 권력을 쥐지만 그 다음엔 반드시 권력이 사람을 삼킨다. 위험한 선동이 광장정치에 편승해 무소불위의 광풍을 일으키는 날이면 나라 전체가 통제 불능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적폐청산세탁기’, 그리고 궤멸그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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