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청백전’ 망국론(亡國論)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5-12 15: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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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13세기 초 세계적인 대제국을 일궈낸 칭기즈칸(Chingiz Khan)의 성공요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상상을 초월한 속도와 신속한 정보망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서양을 여행하던 중에 현지가이드로부터 맨 몸으로 말을 타고 달려오다가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면 말 잔등 옆으로 몸을 숨겨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몽골군에 대해 철갑옷을 입은 서양의 군사들은 미처 칼을 뽑을 시간조차 없이 속수무책 짓밟혔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칭기즈칸은 그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도 군데군데 포스트를 세워놓고 수시로 정보보고를 받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달려온 기마 병사로부터 수시로 정보를 전달받아 분석하고 판단했다. 인류사회에서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고 활용하는 능력의 독점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원동력이었다. 오늘날도 독점하고 있는 정보를 이용해 권력을 키우는 일은 분야를 막론하고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건듯하면 길거리 나서는 속내 불복 심리인 경우 허다

 

자유·평등·비밀선거라는 절차로 국민들이 승자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형식은 민주주의가 자랑하는 가장 주요한 정치제도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다수결(多數決)로 지도자나 집권당을 뽑는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영속한다. 대개의 경우 패자는 일정기간 승자에게 권력을 모두 넘기고 묵묵히 따른다. 최선은 아니지만 그나마 그런 방식이야말로 부작용과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사 역시 처절한 독재시대의 혼란을 거듭한 연후에 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지도자를 뽑는 제도를 정착시키면서 민주국가의 틀을 발전시켜왔다. 패자들은 다수결제도가 갖는 차선(次善)의 가치를 믿고 한동안 패배의 비애를 곧잘 견뎠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국민들은 패배를 쉽게 승복(承服)하지 않는 습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건듯하면 길거리에 나서는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불복(不服) 심리인 경우가 허다하다.

 

대통령 탄핵 경험, 또 다른 불복행태 만들 가능성

 

우리 대통령선거사의 그림자에는 결과에 대한 불복 의식의 진폭이 증대돼온 수상한 사이클이 발견된다. 그 파장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또 하나의 민주주의 진전을 이룩하는 동안 오히려 깊어졌다. 그런 변질은 단지 국회 안에서의 멱살잡이를 넘어서 광장으로 뛰쳐나오는 시민들 사이에까지 틈틈이 박혀 있다.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또 한 번의 불행한 경험을 축적한 지금은 또 다른 형태로 번져갈 우려마저 있다.

 

그 핵심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더할 나위 없이 보편화된 자유와 평등의 신장과 연관돼 있다. 나아가 사람들을 성마르게 한 진짜 이유는 지식정보의 보편화에 있다. 디지털 기술의 혁명과 매스컴의 눈부신 발달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 절대 권력자와 일반 국민들이 확보한 지식정보수준의 간극이 결코 크지 않다. 그렇게 편차가 미세하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부조건 복종하지 않게 만드는 핵심요인이다.

 

지식정보보편화가 불복습성의 핵심요인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오늘날 정치권이 여전히 케케묵은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미련한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난센스다. 권력을 독점하겠다는 승자독식(勝者獨食)’ 의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선거에서 이긴다한들 누구든 무진 고난을 모면키 어렵다. 이제 사람들이 더 이상 승자에게 모든 것을 주는 그 논리의 부실을 끝내 참아내지 않는다. 무분별한 광장정치의 만연은 이미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곤경에 처한 것도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권력독점을 더 이상 인내하지 않게 된 민심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우매함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정치권은 차제에 헌법상 권력구조는 물론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소선거구제 같은 승자독식을 보장하는 모든 장치들을 혁신의 도마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이해관계가 아니라 정책을 중심으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나눠 가질 때 비로소 조용해지는 세상이 됐다.

 

승자독식보장 모든 장치, ‘혁신도마 위에 올려야

 

5.9 대선 결과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대목은 다당제(多黨制)’ 시대로의 전환이다. 동아일보 정성희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보수꼴통 대 친북좌파 프레임에 익숙한 사람에겐 당혹스러웠겠지만 만날 자장면 아니면 짬뽕만 먹다가 뷔페를 먹게 된 사람처럼 고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다자구도는 정치적 균열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선택권을 넓혔다는 점에서는 역사의 진보라고 썼다.

 

정치학자 최장집은 대담집 양손잡이 민주주의에서 그동안 대표되지 못했던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더 자유롭게 표출될 수 있도록, 지금 막 조성되기 시작한 다당제를 안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6월로 예정된 개헌을 앞두고 정치권과 국민들은 이미 대통령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쪽으로 관심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협치에서 연정(聯政)’에 이르는 새로운 정치문화가 시대정신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유치한 청백전문화, ‘무지개 레이스로 빨리 바꿔야

 

돌이켜보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청백전(靑白戰)’ 문화에 찌들어 살아왔다. 아주 어릴 적 초등학교시절부터 운동장에서 청-백 두 패로 나누어 싸움질을 하는 연습을 시켜왔다. 그렇게 아군 적군을 나누고, 죽고살기로 승패를 겨루는 문화 속에 성장해왔던 습성은 개인과 개인 간의 경쟁은 물론 모든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흑백논리또는 옳고 그름의 선입관으로 맞서는 일에 익숙하게 만들고, 나아가 한심한 패거리정치에 물들게 만든 것이다.

 

이제 온 국민이 유치한 청백전 심리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의 삶은 청백전이 아니라, 다양성이 보장되고 존중되는 빨주노초파남보 아름다운 무지개 레이스로 바뀌어야 한다. 인간 사고의 다양성이 수천 배 늘어난 시대에 사람들을 케케묵은 청백의 밧줄로 따로 묶어 두 줄로 몰아세우는 구닥다리 정치는 이제 종언(終焉)을 고해야 한다. 양보의 미덕이 빛나는 협심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결코 혼자 먹어서는 안 되는 권력이라는 고약한 음식을 누구라도 독식하려고 들면 반드시 체하고 토하는 시대가 됐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제대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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