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있으라! Fiat Pecunia!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4-11 13: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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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렬 강남대 경제세무

학과 교수

정부는 경기가 좀 어려워진다 싶으면 곧장 돈부터 풀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 돈이 극단적으로 빈부격차를 확대시킨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그 돈을 수중에 넣은 순서에 따라 같은 금액이라도 그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정부는 복지와 일자리 창출 그리고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많은 돈을 새로 찍어냈다.

 

본원통화가 56조 원(2007년)에서 143조 원(2016년)으로 급증했고 광의개념(M2)의 통화량으로 보더라도 약 1200조 원에서 2400조 원으로 크게 늘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발권된 통화량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60년 동안 발권된 양보다 두 배 반이 넘는 엄청난 규모이다. 만약 그 돈을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면 우리 각자의 주머니에는 전보다 2.5배 이상 많은 현금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지갑이 더 가벼워졌다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돈은 도대체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짐작이 가겠지만 그 돈들은 아주 소수의 손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돈을 풀어 경기를 회복시킨다는 정책효과는 미미했고 일자리도 줄었으며 높아진 생활물가와 더욱 심해진 빈부격차로 서민들만 더 살기 어려워졌다. 비슷한 일이 1980년대 후반에도 있었다.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파산과 민주화, 올림픽, 신도시 건설 등의 영향으로 많은 돈이 풀렸고 땅값이 폭등했다.

 

1988~1990년 3년 동안의 지가상승분이 약 200조원이었는데, 당시 1200만 근로자의 일 년치 급여 총액이 약 50조 원 정도였으니 그것이 얼마나 큰돈인지 짐작 갈 것이다. 그 많은 불로소득은 임야의 84%, 대지의 63% 정도를 독차지한 땅부자 5%의 수중에 들어갔다.


돈 풀기는 빈부격차 확대의 주범

정부는 경기가 좀 어려워진다 싶으면 곧장 돈부터 풀 생각을 한다. 유동성의 힘으로 경기를 회복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오랜 논쟁거리이지만 현대주류 경제학은 돈을 풀면 경기가 살아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돈이 극단적으로 빈부격차를 확대시킨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그 돈을 수중에 넣은 순서에 따라 같은 금액이라도 그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새로 만들어진 돈은 모두에게 동시에 나누어 지지 않고 연차적으로 넘어가는데 그 때마다 가치가 떨어지면서 뒤늦게 돈을 쥐는 사람은 전보다 더 가난해진다. 

 

어느 조그만 마을에서 일어난 우화를 들어본다. 어느 날 이장은 마을의 발전을 위해 은행과 협의하여 새로 돈을 발권해서 아주 싼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먼저 가전제품을 파는 갑(甲)이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

 

그 돈으로 매장 인테리어도 고치고 홍보차원에서 고객들에게 비싼 와인을 사은품으로 선물했다. 그리고 집도 한 채 사고 채권과 주식에도 투자했다. 와인이 잘 팔리자 주인 을(乙)은 와인 가격을 올리고 갑의 권고에 따라 대출받은 돈으로 투자도 했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부인에게 옷도 사주고 악세사리도 선물했다.

 

그러자 악세사리 가격도 올라서 가게 주인인 병(丙)도 돈을 좀 벌게 되었다. 한편, 이윤이 남지 않아서 장사를 접으려고 했던 정(丁)도 거의 무이자로 돈을 빌려 부족한 생활비에 보태고 오랜만에 가족과 외식도 즐겼다.


풀린 돈은 이런 식으로 차례차례 돌면서 가격을 올리고 언뜻 마을이 부자가 된 듯 너도나도 흥청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돈은 계단식으로 퍼져 내려가면서 그 가치가 떨어지고 대다수 주민들은 그 돈을 한 푼도 쥐지 못한 채 올라버린 물가때문에 전에 즐기던 와인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액세서리로 치장하는 것도 벅차게 되었다.

 

주민들은 오히려 더 가난해진 것이다. 자기들이 잘 살게 되었다는 건 착각이었다. 정말 잘 살게 되었다면 같은 소득으로 더 많은 와인을 마시고 악세사리를 선물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경제성장이란 생산기술이 혁신적으로 좋아지거나 생산성이 높아져서 전보다 싼 가격에 누구나 소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 단지 돈만 많아졌다고 해서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증가한 유동성이 효과가 있으려면 국민이 속았을 때 뿐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보시대에 정부가 국민을 속이기는 어렵다. 정말 돈의 힘만으로 국민이 편하게 살 수 있다면 전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정부도 통화량 조절에 그렇게 온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통화량만 계속해서 10%, 20%씩 늘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술혁신이나 생산성 향상 없이 유동성만으로 떠받치는 경제는 부익부 빈익빈만 심화시킬뿐이다. 새로운 돈이 발권될 때 그 돈을 먼저 손에 넣은 사람은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마을에서 먼저 돈을 빌린 갑이나 을은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돈으로 투자해서 자산을 불리고 돈을 크게 벌 수 있다.


그들이 투자했던 부동산과 주식, 채권은 폭등했다.풀린 돈 만큼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고 저축했던 일반 주민들은 비싼 임대료와 물가상승으로 살기만 더 힘들어졌다. 그런데 빚으로 만든 허상에 취해있던 마을에 은행이 갑자기 금리를 올린다고 생각해 보라.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한계상황에 있던 정(丁)부터 파산하기 시작하고 뒤늦게 빚내서 집 사고 투자에 뛰어들었던 사람들도 곧 그 뒤를 이을 것이다. 

 

지금 우리 상황이, 이 마을과 다를 바가 없다. 엄청나게 풀린 돈은 자산 가격만 폭등시켜 부자들은 더 큰 부자가 되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실업과 비싸진 생활물가, 잔뜩 늘어난 빚 때문에 살기가 더 팍팍해져 있는데 금리는 올라가고 있다.


자산품목이 없는 물가지수의 함정

혹자는 지금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 때문에 걱정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물가산정 방식에는 큰 구멍이 있다. 지금 방식은 물가바구니에 무슨 품목을 넣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지수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결정적으로 부유층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산품목은 물가산정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풀린 돈이 자산시장으로 몰린다면 일반 물가는 전혀 오르지 않을 수 있다.


최근 수년 간의 현상이 그렇다. 새로운 성장동력은 없고 생산성은 정체되어 있는 상태에서 풀린 유동성은 실물부문으로 가지 않고 자산시장만 팽창시켰다. 부동산, 주식, 채권 등 자산 가격은 위기 이전 수준을 배로 뛰어넘어 폭등했지만 중하위 계층 국민들에게는 생활고의 원인이 되고 있을 뿐이다.

 

위험한 부채 수준
그동안 유동성의 힘으로 떠 받쳐 온 경제는 갈수록 부채의 산만 한없이 높아지고 있다. 가계부채가 어느 덧 1300조 원을 훌쩍 넘어섰고 그 증가 속도 또한 가파르다. 대출받아 전세자금 마련하고 집을 산 사람들에게는 힘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특히 구조조정에서 내몰린 수백만 생계형 자영업자나 저신용·저소득자 가구의 생계가 위험한 수위에 와있다.

 

이들은 경기에 민감하고 고금리 대출이 많아서 금리가 인상되면 곧바로 나락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토록 많은 돈이 풀렸으면 소비라도 살아나야할 터인데, 이마저도 계속 나빠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50%는 소비부문이 차지한다. 소비를 해야 경제가 살아나는데 부채 때문에 소비할 여력이 없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2008년 143%에서 2016년 174%로 급증하였다. 같은 기간에 미국이 135%에서 105%로 오히려 감소한 것에 비하면 한국의 상황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빚이 많은데 무슨 돈으로 소비를 할 수 있겠는가?


어찌할 것인가?
금융권과 정치권(정부)는 이미 대형 채무자와 운명공동체가 되어 있다. 채무자들의 파산을 금융권의 파산으로 이어지고 국가부도로 이어진다. 지금은 과잉유동성에서 비롯된 부채공화국의 비상시국이다. 지혜를 모아 난국을 돌파할 묘수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온 나라는 국정농단과 탄핵, 중국과의 갈등, 대선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경제는 손을 놓고 있다. 그래서 이번엔 정말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표만 얻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나 허황된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후보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다 같이 허리띠 졸라매고 IMF위기에 버금가는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

 

<글/ 박일렬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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