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정치시평] 슬픈 ‘묵극(默劇)’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4-06 10: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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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지 논설고문,

경북매일신문 논설위원

독일의 여론조사 기관인 알렌스바흐 연구소 설립자이자 소장인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이 정리한 `침묵의 나선이론(The spiral of silence theory)`은 고립에 대한 두려움과 주류에 속하고 싶은 인간의 강한 욕망이 침묵의 나선을 만든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이 다수의 의견과 동일하면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만 소수의 의견일 경우에는 남에게 나쁜 평가를 받거나 고립되는 것이 두려워 침묵하게 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결국 영어(囹圄)의 처지가 됐다. 지난 수개월동안 지속된 탄핵정국 속에서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해괴한 이야기들을 숱하게 듣고 보았다. 그렇게 눈과 귀를 괴롭혔던 민망하기 짝이 없는 권력의 속살들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귀결됐다.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사변 끝에 펼쳐지는 조기대선이 가변성을 띠고 치열하게 펼쳐지는 중이다.

 

  각 정당의 후보들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판세가 거칠게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 선두 추세가 굳건하다. 한동안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하는 듯했던 안희정 바람은 결국 역부족으로 잦아들었다. 문재인을 향한 민심은 지지율과 거부감 모두가 높게 나타나 사뭇 이율배반적이다.

 

  문재인의 선두질주를 뒷받침하는 가장 큰 동력은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초래된 보수정치의 몰락이다. 보수정치가 지리멸렬한 현재의 추세라면 5월 9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정치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가 어려울 게 자명하다. 문재인을 향한 민심 속에는 대안부재론과 불안이 공존한다. 그가 선두주자임을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왠지 못 미더운 구석이 느껴지는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북핵문제에는 미지근하고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와 지원재개를 공언한다. UN의 북한인권결의안 투표에 김정일의 의중을 물었다는 의혹과 `사드` 배치를 놓고 보이고 있는 애매모호함도 꺼림칙하다. 헌재에서 탄핵안을 심리 중일 때 그는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뿐”이라며 공공연히 선동정치를 펼쳐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다. 그를 옹위하고 있는 소위 친문세력의 무지막지한 홍위병식 문자폭탄은 비판정치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국민의당 후보 입지를 굳힌 안철수 전 대표가 문재인 후보와의 맞대결에서 엇비슷한 지지율을 보였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눈길이 간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과반수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 간 후보 단일화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는 대목은 또 한 번 야릇한 민심을 반영하고 있다. 아무래도 작금의 여론흐름에 `침묵의 나선이론`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벌써부터 `투표하러 가기 싫다`는 소리가 즐비하다. 만일 이 같은 흐름이 조금 더 지속된다면 5·9대선 투표율은 형편없이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후보는 따로 없고, 선두를 달리고 있는 주자는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유권자들은 투표를 포기하는 것 말고 달리 선택할 길이 없다. 당선자는 있으되 민심을 흔연히 누리지는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지는 것은 결코 건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모든 것을 잃고 옥에 갇힌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오만 악담을 계속 퍼붓고 있는 세력들의 살찬 모습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대선국면에서 국가적 비극을 활용해보려는 권력지향 세력의 모진 발싸심들도 잔인해 보인다. 물론 이 모든 살풍경이 박 전 대통령 자신이 자초한 일이라는 항간의 촌평에 동의한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 단 한 번도 정상적인 기대와 전망을 좇아준 적 없는 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무구한 민초들을 한없이 우울하게 하는 이 `슬픈 묵극(默劇)`들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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