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형 칼럼] 세금 납기도 엿장수 맘대로 인가

70년대 초, 경기침체 지속 극심한 인플레
세수확보 적신호 해괴한 '조상징수’발동
이젠 방역지원 초과세수‘납부유예’등장
정치권, 선심정책 앞서 담대한 입법 활동을…
심재형 기자 | shim0040@naver.com | 입력 2021-11-22 1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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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국세청장(2) 재임시절인 1970년대 초, 오일쇼크와 경제 침체로 세수확보가 어렵게 되자 국세청은 이른바 조상징수(繰上徵收)라는 해괴망측한 편법을 동원했다. 납세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가불(假拂)하는 징세편법이다. 70년대부터 불어 닥친 경기침체의 지속과 극심한 인플레, 환율 상승, 고리(高利)사채에 의존하는 기업자금 심화 등이 절정에 이르던 시절이다. 

 

당시 수도권을 비롯한 주요 일선세무서장들은 이른 아침 출근도장 찍기가 무섭게 서류가방 챙겨들고 관내 유수기업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금 구걸에 나선 것이다. 기업주들에게 내년 낼 세금을 앞당겨 내 달라고 통사정을 해댔다. 기업주들은 마지못해 다음해 낼 세금을 선납했지만 우리경제가 금방 달라질 상황이 아니었다. 서장들의 약속이 지켜질리 만무했다. 세정불신과 함께 일선 기관장들의 체면은 땅에 떨어졌다.

 

일선 서장들은 납세기업들에 얼굴 들고 못 다니겠다며 국세청 상층부에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쏟아냈다. 어느 지방청장은 조상징수의 부당성을 제기했다가 한직으로 좌천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비록 납세의무가 확정되지도 않은 납세자로부터 세금을 가불(假拂)해다가 국고를 채웠지만 나라살림 밑천 대주느라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던 분들이다

 

세월 무상이라 했던가, 이젠 넘쳐나는 초과세수 감당할 길이 없는지 요상한 분식세정(粉飾稅政)(?)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방역지원금 재원 마련을 두고 정치권으로부터 납부유예예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민주당은 재난지원금을 방역지원금이란 이름으로 내년 1월에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올해 예상되는 초과 세수 일부를 내년으로 과세 유예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올해 걷을 세금을 내년으로 늦춰 내년 예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엿장수가 엿을 늘이듯이, 자기들 마음대로 이랬다저랬다 하겠다는 모양새다. 하지만 납부유예가 마음대로 되는 건가.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홍 부총리는 앞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과세 유예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국세징수법에 유예 요건이 있다고 답했다. 요건이 안 맞는 것을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납부유예 해주면 국세징수법에 저촉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 했다. 국세징수법 13조에 따르면 국세납부기한 연장은 납세자가 재난 또는 도난으로 재산에 심한 손실을 입은 경우, 납세자가 경영하는 사업에 현저한 손실이 발생한 경우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코로나 확산으로 영세사업자 등에 대해 과세가 유예된 건 이 조항 때문이다. 정부 재원마련을 위한 과세유예 조항은 따로 없음이 명확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어느 여당 의원은 납부유예를 통한 방역지원금 재원 마련이야 말로 소위 말하는 국세의 세정지원, 따뜻한 세정이라고 한술 더뜨고 있다.

 

한편 기획재정부가 앞서 발간한 월간 재정동향 11월호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걷힌 국세수입은 2745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조원 가까이 더 걷힌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회복세의 영향으로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중심으로 추경예산 대비 세수 진도율이 87.3%를 기록했다. 특히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진도율은 각각 99.4%81.5% 수준이고, 소득세 진도율도 87.3%를 점했다. 이 같은 세수호조에 대해 기재부는 법인 실적 호조와 자영업자 과세표준양성화, 여기에 재산제세 증가 등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예년과 다름없는 극히 정상적인세정 운영의 결과라는 얘기다.

 

그러나 해마다 넘쳐나는 세수는 우리의 특이한 세율문화의 소산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정부당국이 계속 손사래를 쳐온 법인세율 인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조세학자들은 법인세를 비롯한 자본관련 조세들은 자본의 해외유출을 조장해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린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세율인하에 인색할 경우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이탈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 사인이다. 우리세율이 현실에 맞게 다듬어 졌을 때 비로써 지금과 같은 널뛰는 세수추이도 안정 곡선을 되찾게 된다는 논리다.

 

이런 차제에 현행법에도 저촉된다는 납부유예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정치권의 담론은 담대함인가 무모함인가. 뒷감당도 하지 못할 인기 영합적 발상들은 자제하고, 이 나라 이 땅에, ‘맑은 세제, 밝은 세정이 뿌리내리는데 보다 담대한 입법 활동을 해줘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하고 조세정의를 구현하는 정도(正道)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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