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충신(忠臣)의 조건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4-12 08:42:52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 안재휘 본지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워터게이트사건은 19726월 미국 대통령 R.M.닉슨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가 발각·체포된 단순한 사건이다. 닉슨은 선거에서 압승해 대통령에 재선됐지만,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칼 번스타인 기자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 사건은 결국 2년 후, 닉슨이 의회의 탄핵 가결을 코앞에 두고 자진 하야를 선언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사건에서 꼭 기억해야 할 인물들은 따로 있다. ‘딥 스로트(깊은 목구멍)’라고 불리는 내부고발자인 당시 FBI 부국장 마크 펠트,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를 해임하라는 닉슨의 요구에 사임으로 맞선 엘리엇 리처드슨법무장관이다. 법무장관 사임 사태가 벌어지면서 언론의 탄핵 요구가 시작됐고, 닉슨은 대국민 담화에서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가 모든 미국인들에게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미지를 심어주고 말았다.

 

워터게이트 사건리처드슨의 용기 기억해야

 

()’의 일반적인 의미는 군주와 신하 사이의 낡은 봉건적 윤리 덕목이지만 문자의 의미를 포함한 참뜻은 자기 자신 및 타인, 국가에 대해서 조금의 속임이나 꾸밈없이 자신의 온 정성을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즉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충성이란 특정 권력자가 아닌 국가에 대한 성심일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가치를 갖는다는 이야기다. 나라가 아닌 그릇된 군주를 맹종하다가 역사에 오점을 남긴 엉터리 충신의 비사는 비일비재하다.

 

효경(孝經)에 나오는 효로 임금을 섬기면 이것이 곧 충(以孝事君 則忠)’이라는 경구를 통치의 기둥으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가정에서, 서당에서 가르치는 효() 사상을 충() 사상에 접목함으로써 나라님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심을 강제했다. 민주주의가 만개한 시대의 눈으로 돌아보면 짐은 곧 국가라는 등식이 진실이 되던 시대의 충()은 참으로 큰 모순이다. 예나 지금이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맹종은 결코 덕목이 될 수 없다.

 

나라백성향했던 이순신의 충()은 달랐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李舜臣)의 충()은 달랐다. 이순신 장군은 임금이 아닌 나라백성을 더 섬겼다. 1597년 정유년에 왜()는 조선을 다시 침범하면서 이순신 장군을 제거하기 위해 이중첩자를 동원해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온다는 역정보를 흘린다. 그 정보를 믿은 선조는 즉시 출정하라는 어명을 내리지만 이순신은 끝내 명을 따르지 않는다.

 

선조는 이순신을 한양으로 압송해오도록 하여 조정을 기망하고 임금을 업신여긴 죄(欺罔朝廷 無君之罪)’를 비롯한 어마어마한 4가지 죄목을 덧씌워 극형에 처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우의정 정탁(鄭琢)의 적극적인 변호에 힘입어 가까스로 구명된다. 돌이켜보면, 오직 임금에게만 맹종했던 당시의 신하들과 달리 백성을 충성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순신의 바른 가치관이 나라를 구한 것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잘못된 충성수두룩

 

박근혜 전 대통령을 나락으로 몰아간 최순실 국정농단의 소용돌이 속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잘못된 충성들이 수두룩하다. 그 흑막이 모두 다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드러난 것만 가지고 살펴보더라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리더로서의 자질에 흠결이 많은 인물이거나 시대에 맞지 않는 지도력을 가진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철옹성 같던 불통의 원인이 온전히 비선실세에만 의존해온 습성에 있었다는 사실은 허탈하기 짝이 없다.

 

우선 청와대 비서들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역대 정권들이 그랬듯이 청와대에서 참모들은 나라를 위해서 바르게 일하는 데 관심이 없다. ‘청와대 근무경력을 무사히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은 이미 무성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4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청와대 직원들 중에 최순실 국정농단이 대통령을 파멸에 이르게 하리라는 진단으로 막아선 충신(忠臣)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싶다.

 

()에 대한 가치관 재정립 반드시 필요

 

워터게이트사건은 미국(America)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주는 역설적인 사례다. 권력을 투철하게 감시하는 끈질긴 언론과 권력내부의 부조리를 결코 묵과하지 않는 정보기관의 내부고발자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그릇된 명령에 사표(辭表)를 던진 진정한 충신(忠臣)이 있었기에 정의로운 마무리가 가능했다. 이순신 장군은 용렬한 군주에 맹종하지 않고 나라와 백성들의 안위에 충성함으로써 역사에 길이 남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라는 전무한 국가적 불행을 올곧게 마무리하기 위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충()에 대한 가치관의 재정립이다. 보스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의 대가(代價)로 권력을 누린 정치인들의 치졸한 행태가 얼마나 큰 반역(叛逆)이 되는지를 냉엄한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 조폭세계의 허접한 의리처럼, 오직 패거리와 우두머리에게만 충성하고도 충신으로 남으려는 자들의 행태는 재조명돼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그릇된 충신의 조건은 이제 기필코 청산돼야 한다.

 

<안재휘 본지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저작권자ⓒ 조세플러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naver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편집국 다른기사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헤드라인HEAD LINE

카드뉴스CARD NEWS